본 글은 본인이 2025년 <국제정치연구> 28권 4호에 발표한 논문을 ChatGPT 5.2를 활용해 요약한 것입니다. 원문을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출처: 동아시아국제정치학회
Ⅰ. 서론
논문은 “중세=절대자(신)에 대한 믿음의 시대, 근대=자연 법칙(물리 법칙)에 대한 믿음의 시대”라는 대비에서 출발한다. 근대는 자연현상뿐 아니라 인간의 의식과 행위도 일정한 법칙에 예속된다는 믿음을 강화해 왔는데, 양자물리학이 보여주는 “공존(죽음/삶의 중첩 등)”의 직관은 우리가 근대 이후의 조건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문제를 던진다.
이때 저자는 근대 이후를 “근대의 단절”로만 보지 않고 근대에 대한 이해와 연속성 속에서 설명해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 푸코를 호출한다. 푸코는 개인주의·인본주의가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근대의 형벌 제도가 변화(공개처형/신체형 → 교정/정상화)하는 과정에서 ‘인간성’이 발명되고, 그 ‘인간성’이 정상화 권력과 결합해 근대적 개인을 “생산”한다고 말한다. 즉 처벌의 대상은 점차 ‘육체’가 아니라 ‘정신/영혼’이 되고, 감옥은 범법자를 “정상인”으로 만드는 장치가 된다.
이러한 관점 위에서 논문은 자본주의 발전이 종교적 가치로 위안을 찾던 중세인을 물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근대적 개인으로 재구성해 왔고, 신자유주의는 “자유”를 통치 도구로 삼아 개인이 외부 강제 없이도 스스로를 경영·평가하도록 만드는 자기통치로 진화했다고 짚는다. 그러면서 21세기 플랫폼과 인공지능의 확산은, 근대가 전제했던 인간 중심적 주체성 및 주체–객체 분리를 계승하는 동시에 파괴하는 새로운 권력 양식으로 나타나며, 이를 저자는 **‘근대 이후의 기율(紀律) 권력’**으로 개념화하겠다고 밝힌다.
Ⅱ. 근대정치사상과 ‘나누기’
1) ‘나누기’의 철학적 계보: 이분법과 인간중심성의 형성
이 장에서 ‘나누기’는 단순한 구분이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고 지배하기 위한 근대적 사고의 기본 장치로 제시된다. 논문은 플라톤의 현상세계/이데아 구분에서 시작해(현상은 불완전, 이데아는 완전·영원), 이 이분법이 기독교의 영혼/육체 구분으로 이어지며 ‘초월적 영역’(신/사유)을 우월하게 놓는 사고를 강화했다고 정리한다.
데카르트는 이 전통을 변형해, 신의 영역이던 사유를 인간의 차원으로 끌어오며(“사유하는 나”의 확실성), 인간이 신으로부터 받은 본유관념을 통해 객관적 진리를 파악할 수 있다는 식으로 주체(정신)–객체(물질) 분리와 객관주의를 강화한다. 이어 칸트는 존재를 감각 너머가 아니라 현상세계로 “내려보내면서도”, 인식(존재)과 사유를 구별하는 방식으로 또 다른 분할을 만들고, 이후 근대철학은 인간 중심적 사고 위에서 전개되었다고 설명한다.
이 철학적 ‘나누기’는 사회과학의 실증주의(외부 현실을 객관적으로 분석·예측 가능)로까지 이어지며, 인간의 합리성을 전제한 정치·경제 이론을 뒷받침한다. 즉 인간은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고, 그 합리성에 기반한 사회계약으로 국가가 정당화된다는 사고가 강화된다.
2) 근대 정치사상의 핵: 절대 개인, 합리성, 자유, 그리고 정당화
논문은 근대 정치사상이 중세의 공동체(교회, 관습, 전통, 도덕 체계)로부터 개인을 분리해 **절대 개인(absolute individual)**을 만들어냈다고 본다. 개인은 공동체에 우선하며, 상호주관적으로 규정되는 존재가 아니라 자족적 존재로 상정된다. 이런 전제는 개인의 완전성에 대한 믿음 → 이성/합리성에 대한 믿음으로 연결된다.
자유주의 전통에서 국가는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면서도 침해할 수 있는 “필요악”으로 이해되고, 경제 영역에서는 자유시장·사유재산·기회평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특히 “모든 개인이 이기심을 추구하며 합리적”이라는 가정은, 규제 없는 시장이 효율적으로 자원을 배분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어지며, 인간 외의 자연을 착취 가능한 대상으로 보는 관점을 정당화하는 토대가 된다.
3) 근대국가의 탄생: 권력과 소유권을 ‘나누기’로 설계하다
2장 후반은 ‘나누기’가 정치제도·법·소유권에서 어떻게 구체화되는지 보여준다. 논문은 중세에서 교회와 세속권력의 충돌이 영혼/육체 구분(교회/세속)으로 정당화되었고, 다양한 정치공동체가 공존하던 유럽에서 상공업자·도시가 성장하며 자치권을 획득하는 과정이 근대국가·자본주의의 기반을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특히 로마법 전통에서 소유권을 사용권·용익권·처분권으로 구분하는 방식, 도시국가가 계약과 소유권 보장을 통해 상업경제를 발전시키는 방식 등은 “배타성”을 제도화하는 핵심 메커니즘으로 다뤄집니다. 이후 유럽은 영토국가/자본국가로 나뉘다가 점차 통합되며 근대적 정치경제 체제가 형성되고, 이러한 소유권·법적 토대는 혁명 프랑스의 로마법 체계 및 나폴레옹을 통해 확산했다고 정리합니다.
Ⅲ. 해체주의와 근대 자본주의의 ‘드러냄’
1) 해체주의가 “드러내는” 것: 주체의 해체와 ‘관계’의 재등장
3장은 ‘드러냄’을 해체주의의 핵심 감각으로 놓는다. 니체는 플라톤·기독교적 이분법(신/인간, 선/악 같은 ‘나누기’)이 진리를 고정된 초월 영역으로 만들어 버린다고 비판하고, 진리를 “만물을 드러내는 빛(태양)”에 비유하며, 진리는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형성한다고 설명한다.
이 흐름을 잇는 데리다·푸코 등은 절대 개인·선험적 자아 같은 근대 명제를 비판하며 **주체의 해체(de-centering)**를 주장한다. 개인은 사회 이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문화·언어·사회에 의해 구성되는 존재이므로, 인간/사회 관계를 적대가 아닌 구성의 관계로 보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2) 푸코의 판옵티콘: 근대의 ‘인간성’과 기율 권력이 어떻게 드러나는가
논문은 푸코를 통해 근대의 “인간성”이 철학자들의 선언이 아니라 형벌 제도의 개혁 과정에서 발명된 담론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벤담의 판옵티콘은 육체를 벌하던 방식을 넘어 육체에 갇힌 정신을 교정하는 공간으로 설계되며, 최소 비용으로 최대 감시 효과를 낳는 효율적 권력기제로 작동한다. 근대 사회 전체(학교·공장·감옥 등)가 거대한 판옵티콘의 복합체가 되어, 주체화는 동시에 정복의 과정이 된다는 것이 푸코적 진단이다.
3) 신유물론·포스트휴머니즘: 비인간 행위자와 ‘뒤얽힘’의 세계를 드러내다
논문은 신유물론을 “수동적 물질” 전제를 비판하고 물질을 능동적 행위자로 재해석하는 흐름으로 소개한다. 원자/물질은 외부 힘에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 역량을 발휘하며 변화하고, 세계는 인간과 사물이 함께 구성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이런 관점은 “뒤얽힘(entangled)”과 “부분적·미결정성” 같은 키워드로 요약된다.
또 시몽동의 기술철학(기술적 대상의 개체화/발생적 생성 추적)과 포스트휴머니즘(인간 중심 존재론 해체, 인간/사물의 동등한 지위, 보편적 인간 동일성의 해체)이 연결되며, 인공지능의 출현은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인간중심주의를 더 강하게 흔든다고 정리한다.
4) 자본주의를 ‘드러냄’으로 읽기: 경제구조만이 아니라 통치기술로서의 자본주의
3장 후반에서 저자는 자본주의 정의의 다양한 전통(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 애플비의 문화체계,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 마르크스의 생산양식)을 소개한 뒤, 푸코가 자본주의를 통치 기술과 주체 생산 메커니즘으로 분석한다는 점을 강조한다(마르크스가 경제 구조를 보았다면, 푸코는 권력의 미시작동을 본다).
Ⅳ. 21세기 자본과 기술의 ‘드러냄’
1) 기술의 본질: 하이데거의 ‘탈은폐’와 현대 기술의 몰아-세움
4장은 기술철학을 도구주의/기술결정론/사회적 결정론으로 구분하면서, 근대적 시각이 기술을 “편익을 주는 도구”로 이해해 왔음을 짚는다. 이어 하이데거를 통해 도구는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고 도구들의 전체성 속에서 의미를 갖고, 기술은 세계를 어떤 방식으로든 드러내는(탈은폐하는) 사건이라는 관점을 전개한다.
하이데거적 설명에서 현대 기술은 자연을 ‘비축품(Bestand)’으로 변형·저장·분배·전환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인간 자신도 비축품으로 존재하도록 몰아세운다(Gestell). 즉 현대 기술의 본질은 존재자들을 “부품/자원”처럼 탈은폐하도록 강제하는 몰아-세움이며, 이는 통제와 지배의 폭력적 성격을 띤다고 정리된다(다른 탈은폐 가능성을 막아버린다는 의미에서).
2) 자본·욕망·기술의 결합: “축적/배타성”이 기술 사용 방식에 스며드는 방식
논문은 축적하고 위계적 배타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이 계급과 자본을 만들고, 자본은 다시 그 욕망을 확장시키는 상호작용을 강조한다. 기술은 자본 축적에 기여하고, 자본은 기술 발전의 기반이 되며, 그 과정에서 기술의 “사용 방식” 자체에 구성된 욕망이 반영된다. 니체가 종교 대신 물신을 숭배하게 된 근대인의 모습을 비판했다는 언급은, 자본 축적이 현대인의 위안/가치체계를 대체하는 지점까지 포함해 읽히도록 돕는다.
3) 21세기 기율 권력의 핵심 장면: 플랫폼·감시·평가·의존의 일상화
4장 후반에서 논문은 21세기 감시와 기율 권력을 근대의 연속성 속에서 보되, 양상이 변형되었다고 설명한다. 판옵티콘의 원리는 “감시자는 보이지 않게, 감시 대상은 노출되게” 설계해 대상이 항상 감시당한다고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었고, 이는 “보는 기술이 권력 효과를 낳는 장치”로서 계몽의 이념이 사실상 권력기술이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논리를 21세기로 가져오면, 플랫폼 공간에서는 행위자들이 서로를 평가하고, 공공/사적 카메라로 서로를 감시하며, 의사결정을 인공지능에 미루고 의지하는 장면이 구조적으로 늘어난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강화해 온 “개인”은 이제 21세기 기율 권력에서 또 다른 주체로 등장한다. 즉 중세에는 권력자가 “드러남”으로 무대의 주인공이었지만, 근대에는 감시자(권력자)는 드러나지 않은 채 감시 대상만 드러냈고, 21세기에는 그 “드러냄”이 플랫폼적 상호감시·상호평가로 일상화된다는 문제의식이 제시된다.
Ⅴ. 결론 및 시사점
결론에서 논문은 전체 논지를 다시 묶는다. 즉 근대 정치사상이 절대 개인을 만들고(근대적 주체성), 자본주의와 국가의 확산이 권력·소유권의 ‘나누기’를 제도화했으며, 해체주의와 기술철학은 근대의 토대(이분법·인간중심성)를 비판하고 다른 방식의 ‘드러냄’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특히 21세기 과학기술—플랫폼과 인공지능—은 근대가 전제한 인간 중심적 사유와 생활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하고 있으며, 인간이 축적하고 배타적 위계를 추구하는 존재로 형성된 과정 자체가 정치경제적·사회적 맥락 속에서 “구성”되었음을 강조한다. 따라서 개인은 고립된 주체가 아니라 공동체의 가치·규범 속에서 형성되며,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공동체를 구성한다는 관점에서 인간 행위를 재사유해야 한다는 것이 결론의 핵심 제안이다.
또 결론은 근대적 이분법(현상/이데아, 주체/객체, 영혼/육체 등)의 계보가 인간의 이성·합리성, 객관적 개인의 완전성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졌고, 그 믿음이 “이기적 개인”과 “도구적 이용(효율 추구)”을 정당화해 왔음을 요약한다. 그 한계는 인간이 비인간과 상호 연결된 존재라는 점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데 있으며, 해체주의(니체의 비판 등)는 바로 그 ‘나누기’를 흔들어 ‘드러냄’의 다른 방식(관계·구성·뒤얽힘)을 열어젖힌다고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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